짧은글긴감동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藝友 2009. 10. 10. 19:44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 숲은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 때 이곳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 치면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 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류시화

 

The Wind Of Change - Rod Macku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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