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전시회를 열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상파 화가들은 경제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살롱의 환영은커녕 이들의 그림을 구매해줄 미술 시장은 여전히 성숙하지 않았다.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예술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모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피사로 (일각에서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프랑스 화가)처럼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아르장퇴유를 떠나서 파리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화가로 살마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살아간 방식은 단순했다. 한번 큰 건수를 올리면 당분간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식이었다. 르누아르가 대표적이었다. 초상화를 그려주고 그 돈으로 연명하면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첫 번째 인상파 화가전을 한 뒤로 몇 년이 흘렀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