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名畵

TITANIC

藝友 2012. 9. 13. 14:53

 

 

가을비가 추적 주적 내리는 날 타이타닉 감상 하다.

멋지고 감동스러운 영화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여 1,517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새로 건조한 화이트 스타 회사의 호화 여객선인 5만 2,000t의 타이타닉호가 1912년 4월 10일 잉글랜드 남해안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으로 처녀항해에 나섰을 때, 이 배는 그때껏 물에 떴던 최대의 선박이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 나흘 후 오후 11시 40분, 호화로운 에드워드 왕조풍 건조물이자 과학기술적 쾌거의 상징인 이 거대한 배는 맑은 하늘을 뒤로 하며 빠른 속도로 고요한 바다를 나아가던 중 빙산과 충돌했다. 충돌의 여파로 타이타닉호의 측면에는 길고 깊은 상처가 생겼고, 이 거대한 배가 결코 침몰하지 않게 도와 줄 것이라 믿었던 수밀격실(水密隔室)에는 하나씩 하나씩 물이 차기 시작했다.

점차 공포가 고조되면서 두 시간 사십여 분이 지나자, 타이타닉호는 65도 각도로 고꾸라졌으며, 뱃머리 쪽부터 대서양의 얼음 같은 물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작 20대의 구명보트에는 2,200명의 승무원과 승객 중 절반만이 탈 수 있었고, 그나마 일부는 반쯤 빈 채로 물에 띄워졌다. 다음 날 아침 정기선 카르파티아호가 705명의 생존자를 구해냈지만,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를 포함한 1,517명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재난이 발생한 근처에 있었던 배 캘리포니아호의 승무원은 타이타닉이 보낸 SOS 조명탄을 축포로 오인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화이트 스타의 사장인 브루스 이즈메이를 비롯한 남성 생존자 몇몇은 여성과 어린이를 대신 태우지 않고 자기가 살아남았다고 공격을 받았다. 사망자 가운데에는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아래 갑판의 3등실 승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985년 로버트 발라드가 이끄는 미국-프랑스 공동 단체가 약 4㎞ 깊이의 바다 속에서 배의 잔해를 발견했다. 이후 그 지점에서 선체의 커다란 앞부분을 비롯해 수천 점의 유물을 인양했으며, 이를 소재로 한 사진과 영화가 많이 나왔다.

" … 이 사건은… 세계를… 덜 평화롭고, 덜 만족스럽고, 덜 행복함을 향해 눈뜨게 했다."
잭 B. 세이어, 타이타닉호의 생존자

 

 

 

 

 

 

 

영화사상 최고의 감동이 3D로 되살아난다!
비극 속에 침몰한 '세기의 사랑', 스크린에 되살아날 '영원한 감동'!


1912년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당대 꿈의 배라고 불렸던 ‘타이타닉 호’가 탐사대들에 의해 세상에 발견되면서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비극적인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7세기 엄격한 사회 질서에 숨막혀 하는 미국 상류층 로즈(케이트 윈슬렛)는 사교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권위적인 재벌 귀족 약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타이타닉 호’ 1등실에 승선한다. 배가 출발하기 전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운 좋게 ‘타이타닉호’의 3등실 티켓을 얻은 가난한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아슬아슬하게 배에 승선한다.

첫 눈에 1등실의 로즈에게 반한 잭은 갑판에서 우연히 바다로 몸을 던지려 하는 로즈를 발견하고 재치 있는 언변과 행동으로 그녀의 생명을 구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등실의 저녁식사에 초대받게 되고 서로에게 끌리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이후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타이타닉호’ 침몰조차 갈라 놓을 수 없었던 세기의 로맨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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