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화와 신앙 - 성공회 신문 연재 글(27):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자비로운 마음을 체험하는 시기

 - 알레그리의 미제레레(Miserere)

평소와는 무언가 다른 마음가짐을 생각하게 하는 절기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신심 활동 방법이 있을 터, 그 중 알맞은 것을 골라 마음을 다잡는 귀중한 시기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순 절기에 들을 만한 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있던 차, 음악에는 완전 문외한이기에 그럴 능력은 없고, 이 시기에 자주 듣는 곡을 잠시 소개하는 선에서 변죽만 울리고자 한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의 미제레레(Miserere)라는 곡이 있다. 찾아서 들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곡일 것이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주간 미사 때, 교황청 합창단을 위해 작곡한 곡으로 알레그리는 이 곡 하나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된다. 다윗의 참회시로 알려진 시편 51편의 내용에 곡조를 붙인 것이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취한 후에 나단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죄를 간절히 참회하며 지은 것으로 시편 51편은 전통적으로 성주간에 낭송되거나 노래로 불려졌다고 한다.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로 "불쌍하게", "가련하게"라는 뜻이 담긴 단어로 우리 기도서에서도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시작된다. 해마다 이 곡은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으로 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곡을 듣고 감명 받은 교황이 악보를 시스티나 성당 밖으로 반출하는 사람은 파문시키겠다는 엄명을 내려 오랫동안 교황청 안에서만 연주되다가 모짜르트가 단 한번 듣고 암보하여 악보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이 곡을 제일 잘 소화하는 사람들은 탈리스 스콜라스(The Tallis Scholars, 1973년 창단)라는데 이견은 별로 없는 듯 하다. 16세기 영국 르네상스 음악을 주도했고 우리 성공회 교인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작곡가 토마스 탈리스(1505년~1585)의 이름에서 따온 이 팀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영혼을 울리는 곡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성주간의 막바지 즈음 웅장한 울림이 있는 성당에서 점차로 촛불이 하나씩 꺼져가며 그 분의 수난을 우리 마음 속 깊이 체험하는 시간... 그래서 시인 김지하는 ‘미제레레’를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고 고통 속에서 은총을 비는 것’이라 했던가. 빛이 점점 사라져 깊은 어둠과 침묵만이 흐르는 절망의 극한 너머에 다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볼 수 있으리라.  곡의 길이도 묵상하기 적당한 시간이기에, 이번 사순 기간 저녁 성무일과 때에 이 곡을 활용해 볼까 한다.

그림설명

조르주 루오(1871. 5. 27- 1958. 2. 13, 프랑스), 미제레레 연작 중, ‘멸시받는 그리스도(1917~27)’, 동판화.

 

 

출처 : 성공회 병천교회

글쓴이 : stephan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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