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名畵

펄벅의...大地

藝友 2009. 5. 24. 15:51

그때가 언제 였던가 내 나이가 정확히 계산 되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분명히 펄벅(작가)의 大地라고 말씀 하셨었고.

그 어린 나이에도 ...어두운 밤 엄마 손잡고 영화 대지를 봤던 생생한 기억은

...중년이 된 지금도 언젠가 다시한번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 되어왔다.

 

가끔 추억의 영화라든가 ...

상영에 성공한 영화들은 몇번씩 재탕이 되는데 大地는 내 어린시절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 했었지만.

그후..

티비에서라든지..그 어는곳에서도 접할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

영화를 좋아 한다는 사위가 말했다.

"장모님..보고싶은 영화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뜻밖의 제안에 반색을 하면 즉시..펄벅의 대지라 말했지...

신접살림을 차린 집안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동영상리뷰 빔을 설치하여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게 하여준다나?

모든 시스템이 완료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된 영화라 볼 수있을지 ....말을 흐리더구만...

찾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아이들과 함게 인천으로 올라가 하룻밤 묵으며

보고싶어 했던 영화..대지를 봤다.

집안의 전등을 소등하고 ,,,한잔의 맥주로 건배를 나누며 저 마다 이리눕고 저리 앉는 편안한 자세로

잠시 대지를 보면서 추억에 젖어 봤다.

 

...

흑백영화...

지금봐도 멋졌다..

내 어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그 추억...

그리고..

내 사위가 남겨준 이 추억도...

아주 오래 뇌리에 젖어있겠지..... 生이 다 할때까지...

 

 

대지의 한 장면이다...~

 

줄거리..

 

왕릉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다. 오로지 농사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나이가 들어 장가를 해야 하나 신부를 고를 형편이 되지 못한다. 마침 지방의 지주인 황씨네 종으로 자란 오란을 돈을 주고 사온다. 오란은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건강하고 일밖에 모르는 억척 여성이었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그야 말로 일밖에는 몰랐다. 가난하던 왕룽의 집안은 서서히 평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땅을 조금 씩 사들이고 넓혀갔다. 하지만, 자연은 순순히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혹독하리 만치 지독한 가뭄이 그들을 괴롭힌다. 참으려 했지만, 풀뿌리 까지 먹으며 가난을 이겨내던 이들도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토지를 팔고 왕룽은 남쪽 도시로 돈벌이를 떠난다. 오란은 구걸을 하며 목숨을 이어 나간다.

 

얼마 후 난리가 일어난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인이 도망간 부자집에 뛰어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들고 나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구걸을 하며 연명하던 오란은 어느 부자집에 들어가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예전에팔았던 자신들의 땅을 다시 사들였다. 그러나 자연은 또 다시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이번에는메뚜기 떼가 들이 닥친 것이다. 다시 농토는 황폐화 되고 그 와중에 왕룽은 바람을 피운다.

이런 고생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오란이 죽고 만다. 오란이 죽자 왕룽과 그의 자식들은 그제서야 어머니 오란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늙은 대지주 왕룽 그는 가난한 농부로 시작하여 성실하게 일한 덕분으로 대지주가 되지만, 한 때 방탕한 생활을 함으로서 결국에는 자식들에 의하여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왕룽을 지켜주었던 것은 토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토지밖에는 없다는 진실을 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지에 대한 집착력. 그것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어떻게 땅을 관리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왕룽을 통하여 척박하고 끈질긴 농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저자의 이력에서 보듯 중국에서 생활하지 않고서는 감히 그려낼 수 없는 중국 농민의 실생활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얻게 되는계기가 되었고,

저자의 외동딸이 백치였던 사실에 접목하여 소설 속에서 왕룽의 첫 번째 딸이 백치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소설에 투영시킨 것이며, 격동하는 중국의 장대한 역사 속에서 저자를 사로잡은 것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서 태어나 척박한 삶을 그려내는 질긴 잡초와도 같은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 하더라도 홍수나 가뭄, 또한 메뚜기 떼와 같은 낮을 밤으로 바꾸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인간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나약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그 자연과 끝까지 싸워나가는 모습에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1973년]

미국 소설가 펄 벅 사망


‘대지’ 의 저자 펄 벅.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펄벅이 1973년 3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생후 수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학교를 다닌 뒤, 1914년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랜돌프메이컨여자대학을 졸업했다. 그 뒤 중국에 돌아와 난징에서 대학교수가 됐다. 1917년 후에 중국 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 박사와 결혼, 두 딸을 두었지만 큰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라지 않는 아이`에서 펄 벅 자신이 술회하듯이, 이 사실이 그녀를 작가로 만든 주요한 동기의 하나가 되었다.
1923년 중국 생활에 대해 쓴 논설과 단편소설들을 미국 잡지에 처음 기고했고, 1930년 중국에 있어서의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처녀작 ‘동풍.서풍’을 발표했다. 이어 1931년 ‘대지’ 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한 중국인 농부와 노비 출신의 아내가 땅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속편으로 발표된 ‘아들들’ ‘분열된 집안’과 함께 1935년 3부작 ‘대지’로 출판됐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미국의 양심으로서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면서,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였다. 1967년에는 이 사업에 700만 달러를 희사했으며, 6 ·25전쟁 후에는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를 썼다.

 

*

*

*

 

그리고 다음 날 가족들과 7급 공무원을 CGV에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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