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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함부로 걸어선 안되는 까닭?

藝友 2017. 1. 23. 18:05

눈길을 함부로 걸어선 안되는 까닭?




1604년 오늘(1월 23일)은 눈과 관련한 명시를 남긴 서산대사가 입적한 날입니다. 서산(西山)은 스님이 오래 기거한 평안도의 명산 묘향산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예로부터 동금강(東金剛), 남지리(南智異), 서구월(西九月), 북묘향(北妙香)이 한반도의 4대 명산으로 꼽혔습니다. 서산대사는 금강산은 수려하지만 장엄하지 않고, 지리산은 장엄하지만 수려하지 않고, 구월산은 수려하지도 장엄하지도 않지만 묘향산은 장엄하면서도 수려한 산이라고 총평을 했지요. 아마 서산대사의 삶도 수려하면서도 장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서산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이지요. 열 살 때 고아가 됐고, 평안도 안주목사 이사증의 양아들로 들어갔다가 과거에 두 번 낙방한 뒤 18살 때 출가합니다. 명종 때 부활한 승과 시험에서 1등 합격을 하고 교종판사, 선종판사, 선교양종판사 등을 역임하고 봉은사 주지로 임명되지만 눈병을 핑계로 속세를 떠납니다.

대사는 금강산과 여러 산을 거쳐 묘향산에서 도를 닦습니다. 정여립의 난 때 모함을 당해 체포되지만, 오히려 선조의 그림과 글을 받으면서 풀려납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신하는 선조의 ‘SOS’를 받자 승병의 대대적 참전을 건의하고 이 제안이 받아져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의 직책으로 전국의 승병을 통솔합니다.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선조가 서울로 되돌아와 폐허가 된 수도를 복구하는 작업을 펼쳤지만 유신들은 이때 시기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네요.

휴정은 승병 총대장의 자리를 제자인 사명당에게 넘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다가 413년 전 오늘 열반을 준비했습니다. 그날도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한 다음 자신의 모습을 그린 영정에 시 한 수를 씁니다.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八十年前渠是我),
80년 뒤에는 내가 저것이구나(八十年後我是渠).

그리고 제자인 유정, 처영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뒤 결가부좌를 한 채 입적합니다. 한 동안 신비한 향이 방에 그득했다고 합니다. 대사는 수많은 시와 명문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아래의 오언절구이지요. 백범 김구도 좌우명으로 삼았고, 숱한 현인들이 마음에 담은 명시입니다. 곳곳에 눈이 남은 오늘 그 뜻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라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은
언젠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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