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긴감동

빈집

藝友 2017. 11. 18. 18:05


빈집

       기형도 (1962~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29세 짧은 생을 살고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홀연히 떠나버린  기형도시인의 마지막 詩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런 시를 썼을까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렇게 한편의 시였나 보다.



그는 중앙일보에서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활동했었고

시인이기도 하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고

그의 유고집으로는 '입속의 검은 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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