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風景

윤증고택

藝友 2010. 4. 11. 19:54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위치

 

 

 

 

 

 

 

 

 

윤증(尹拯)[1629-1711]은 당시 소론파의 지도자이자 대학자로 알려져 있다. 수차례의 관직 임명을 고사했으며 특히 우의정 임명을 마다하여 백의정승이라 불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본 고택은 18세기 윤증(尹拯)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가 직접 생활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윤증고택(尹拯故宅)에는 바깥에 노출된 사랑채가 있다. 보통 옛날 한국집은 집 외곽을 둘러싸는 담이 있다. 이 담은 집밖과 집안의 경계가 되어 이 둘을 구분한다. 그리고 사랑채는 이 담 안에 들어가 있다. 집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윤증고택(尹拯故宅)은 예외이다. 윤증고택(尹拯故宅)에서는 집 외곽을 둘러싸는 담을 찾을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랑채 건물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사랑채가 바깥에 내어 놓여진 꼴이 된다. 그만큼 훨씬 개방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개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증고택(尹拯故宅)의 사랑채에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진 누마루가 있다. 이 누마루는 건물 좌측에 놓여 있다. 누마루가 이곳에 위치한 것은 윤증고택(尹拯故宅)의 좌측에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서원은 집주인인 윤증(尹拯)이 설립, 운영하는 서원이었다. 이 누마루에서 바로 서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누마루가 앉혀 있는 사랑채 건물은 서원에 비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서원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어 있다. 즉, 이 누마루는 망루같은 성격을 가진 곳이다.
이 누마루 좌측에는 사람들이 통행하는 통로가 있다. 집안사람은 물론 바깥사람들이 출입하는 통로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각 및 접근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 누마루가 공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랑채 건너편에 위치한 유사한 형식의 마루에 비하면 더욱 공개적이라 할 수 있다.
윤증고택(尹拯故宅)에는 보통의 옛날 한국집에서 볼 수 있는 대문이 없다. 그 대신에 대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장소가 있다. 윤증고택(尹拯故宅) 앞에는 길과 단이 있는데 바로 이 곳이 그런 역할을 한다. 여기에 놓인 길은 제법 길다. 그래서 윤증고택(尹拯故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걸어야만 한다. 단 또한 제법 높다. 그래서 단 위의 공간과 단 아래의 공간은 제법 떨어뜨려진 것이 된다. 대문이 집안과 집밖을 구분하듯이 윤증고택(尹拯故宅)에서는 단과 길이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옛날집의 경우 사당채는 집 안에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당이 집안과 집 밖을 구분하는 큰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당으로 출입하는 문 역시 그 울타리 안에 놓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증고택(尹拯故宅)의 사당은 예외이다. 집안에 들어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윤증고택(尹拯故宅)에는 집 전체를 둘러치는 울타리가 없다. 그래서 사당건물은 물론, 출입문 역시 집 밖에 놓여진 꼴이 된다. 집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사당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방식의 접근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만큼 사당은 개별적이다. 다른 시설과 독립된 그런 사당이 되는 것이다.
안채에는 네모난 마당이 있다. 크게 보면 이 마당은 ㄷ자의 안채 건물과 -자로 된 문간채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문간채는 사랑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사랑채와 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안채, 문간채, 사랑채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이 집의 사랑채는 개별성이 적은 대신, 안채, 문간채 등 집의 다른 시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개별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사랑채가 되는 것이다.
윤증고택(尹拯故宅)에는 안마당 외에 조그마한 마당 하나가 더 있다. 이 마당의 주위는 건물과 담으로 둘러 싸여 있다. 그래서 제법 개별적인 마당이 된다. 하지만 이 마당은 집안의 다른 곳과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안채, 사랑채, 사당채 모두와 통하게 되어 있다. 이 마당은 안채 건물과 면해 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출입문이 있어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나머지, 담으로 둘러쳐진 부분에는 문이 있다. 그 위치가 각각 사당, 사랑채 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당, 사랑채 쪽으로의 통행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이 마당은 매우 독립적이면서도 주변과 모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된다.
윤증고택(尹拯故宅)의 사랑채에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진 대청이 있다. 사랑채 우측에 있는 대청이 바로 그곳이다. 이 대청은 좌측에 있는 대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통행로로부터 떨어져 있고 비교적 그 위치가 안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이 대청은 세 면이 열려 있는 구조이다. 앞 쪽은 바깥쪽을 향해, 오른쪽은 화초 등이 가꾸어진 뜰을 향해, 그리고 뒤쪽은 사당을 향해 열려있는 식이다. 그만큼 이 대청은 주변과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지랖 넓은 대청이 되는 것이다.
집 바깥에 나와 있는 것 같은 사당, 안채, 사랑채 등, 집의 이곳 저곳을 서로 묶어 주는 장치가 있다. 사당에 난 문이 그 하나이다. 사당의 문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사당이 아닌, 다른 시설들이 있는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다. 그 앞에는 또한 길이 나 있다. 이들 때문에 사당과 시설들과의 거리가 좁혀 진다. 실제적인 거리는 물론 심리적인 거리도 마찬가지이다. 문이 가운데 있다면 권위적이기 쉽다. 즉, 사당 중심의 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당과 다른 시설과는 그만큼 거리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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