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名畵

아무르

藝友 2014. 4. 21. 18:59

배너

영화 [아무르]를 소개합니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좋아하기 힘든 복잡한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 동시에 치를 떨었어요. 언제나 '폭력', '잔혹' ,'파격' 같은 단어로 설명되는 그의 영화들. 그 온도는 굉장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없이는 불가능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는 차가우면서도 분명히 따스함을 아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지난 5월 칸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아무르]가 이전 작품과 사뭇 다른 사랑 이야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무척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이 좀 길어졌지만 이제라도 이 작품을 보게 되어 기쁘네요.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 지금껏 말 못했지만 실은...사랑합니다."

 

다정한 노부부

1연주회장의 부부
2망가진 현관문
3반응이 없는 안느

조르주와 안느는 80대 부부입니다. 음악을 가르쳤던 두 사람은 오늘도 제자의 연주회에 다녀오는 길이죠. 음악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둘 사이엔 대화가 끊이지 않고, 그 모습이 참 다정해 보여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 손잡이가 망가져 있습니다. 아마추어 도둑이 집을 털려다 실패한 모양이에요.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문을 고치자는 조르주의 말에 안느가 걱정합니다. "우리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들어온다고 생각해봐." "뭐 하러 그런 생각을 해?" 조르주가 대꾸하죠. 이런 대화조차 다정하고 우아한 걸 보니, 지금껏 별 탈 없이 살아온 교양 있고 애정 넘치는 부부가 확실합니다.

다음 날 아침, 안느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조르주는 전화를 걸어 현관문 고치는 사람을 불렀죠. 그런데 삶은 달걀을 먹으려던 조르주가 "소금통이 비었네?" 하는데도 안느가 꼼짝하지 않아요. 스스로 갖다 먹으란 뜻인가 싶어 일어서는 조르주. 소금을 가져오면서 말을 거는데도 안느에게선 아무 대꾸가 없는 겁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눈빛에 초점이 없네요. 순간 조르주의 가슴이 철렁합니다. 수건을 적셔 아내의 얼굴에 대봐도 반응이 없자, 이웃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절뚝절뚝 부엌을 나서요. 방에서 겉옷을 걸치던 그는, 싱크대에 틀어놓았던 물소리가 뚝 그친 걸 깨닫습니다. 서둘러 부엌에 돌아가 보니, 안느가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남편을 보네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줬지만, 안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에요.

휠체어를 타고 돌아온 그녀

1딸과 아버지
2돌아온 안느

조르주는 딸과 마주 앉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음악가 딸이죠. 한참 동안 남편과 아이들 얘기를 하던 에바가 불쑥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 대해 묻네요. "무슨 수술이에요?" 조르주는 침착하게 설명합니다. 경동맥이 막혀서 수술을 했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고요. "실패 확률이 5%라고 했는데...정말 어이가 없지." 조르주는 조용히 감정을 다스립니다. 아버지의 침착한 말투 때문인지 에바는 이 병의 심각함을 실감하지 못한 듯해요.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조르주는 바로 대답합니다. "없어.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구나. 정말이야, 신경 쓰지 마. 일단 엄마가 퇴원해봐야 알 것 같구나. 우리끼리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며칠 뒤 안느는 휠체어에 탄 채로 집에 돌아오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 말고는, 예전과 다름없이 품위 있고 아름다운 아내입니다. 안느는 최대한 자신에게 생긴 장애를 무시하려는 것 같아요. 의자에 앉을 때나 침대에 누울 때는 남편에게 의지해야 했지만, 너무 살뜰한 보살핌은 필요 없다고 말하죠. 아무 일 없다는 듯 침착한 안느가 딱 하나 단호하게 부탁한 게 있었습니다.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라는 것. 부탁이라기보다는 요구였죠. 조르주는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변함없는 것들과 변하는 것들

1조르주의 이야기
2주저앉은 안느
3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어쩔 땐 정말, 별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안느는 왼손으로 능숙하게 식사를 했고, 조르주는 그 옆에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죠. 어린 시절에 본 영화 이야기에요. "영화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그 감정만은 잊을 수가 없어. 영화 보면서 운 것도 창피한데 남한테 얘기해주다가 또 울다니, 심지어 영화 볼 때마다 더 많이 울었어.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조르주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감동적이에요. 내용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반세기 넘게 같이 산 이 부부가 여전히 '어린 시절에 있었던 작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요.

안느

이런 얘길 왜 이제야 해?

조르주

아직 안 한 얘기 아주 많아.

안느

늙어서 이미지 망치면 어쩌려고 그래?

조르주

안 그러도록 해야지.


이런 시간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고,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사랑하고 노력해도 깊어지는 안느의 병을 막을 수는 없었죠. 어느 날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조르주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하는 안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요. 창문을 닫으러 왔다가 휠체어에서 미끄러져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조르주는 너무 속상한데 안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꾸 말을 돌리네요.

"왜 벌써 왔어? 장례식은 어땠어?"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그녀의 말투엔, 깊게 상처받은 그녀의 자존심이 숨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조르주는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참 듣고 있던 안느가 불쑥 말하네요.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게 뻔하잖아. 우리가 왜 같이 힘들어야 해?" "난 안 힘들어." 조르주가 놀란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내는 죽음을 바라는 걸까요? 어떻게 자기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걸까요?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사이엔 처음으로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밖에서 온 사람들

1제자 알렉상드르
2제자 앞에 선 스승
3어머니를 만난 에바
4흥분한 에바

언제나 두 사람뿐인 일상이지만, 손님이 찾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안느가 무척 아끼는 제자 알렉상드르(실제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출연합니다)가 근처 호텔에 묵는다며 불쑥 찾아왔죠. 휠체어 탄 안느의 모습에 다소 놀란 그는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안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해요. "오른쪽이 마비됐어. 늙으면 이런 병도 와." 그리곤 바로 화제를 돌리는 안느. 오랜만에 만난 제자와 병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음악 얘기를 하고 싶었죠. 몸은 불편하지만 지성과 자존심은 그대로인 안느에게는, 환자로만 정의되는 지금 상황이 견디기 힘들 겁니다.

딸 에바가 곧 귀국해서 방문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어요. "난 싫은데. 조프(사위)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내 상태 보면 또 참견할 텐데." 막상 그날이 닥쳤을 때 안느의 상태는 훨씬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마비가 입까지 올라와 이제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에바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거실로 나온 에바는 아버지를 공격하죠. "저렇게 눕혀만 두면 안 되잖아요. 왜 입원을 안 시켜요?" 조르주는 침착하게 어머니의 상황과 의사들의 소견을 들려줍니다. 그래도 딸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엔 반대로 묻죠.

조르주

더 좋은 생각 있어?

에바

요즘 같은 세상에 치료법이 이것밖에 없다니요.

조르주

 

 

 

그럼 네가 직접 알아봐.

너만큼 나도 네 엄마를 사랑한다.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마.

그 정도 일도 처리 못 할까 봐 그래?


조르주의 단호한 태도에 딸과 사위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죠. 이제는 손님이나 다름없는 자식들 앞에서 조르주는 딱 잘라 말합니다. "월요일부터 간호사가 주 3회 올 거야. 됐어? 이제 다른 얘기 할까?"

힘겨운 싸움

물을 거부하는 안느

간호사가 오기 시작했다는 건 안느의 상태가 한층 더 나빠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유일한 의사표현은 "아파!"라는 외마디 비명뿐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조르주도 고통스럽죠. 병이 깊어져 간호사를 한 명 더 고용했지만, 이번엔 불친절한 간호사에게 대책 없이 몸을 내맡긴 아내를 보기가 괴롭습니다. 곧바로 간호사를 해고한 조르주, 힘들어도 직접 병수발을 해요. 끈질기게 말 연습도 시켰고, 기분이 좋은 날은 안느도 웃었죠. 하지만 망가져 가는 몸에 비해 명료한 정신을 갖고 있는 안느의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고집스레 음식과 물을 거부하죠. 조르주는 사정합니다. "물 안 마시면 죽어. 죽으려고 그래? 마셔, 제발 부탁이야. 당신 목말라 죽는 꼴을 나더러 보란 거야?" 억지로 물을 먹이는 조르주, 고집스레 입에 품고 있다가 뱉어내는 안느, 그렇게 두 사람은 끝을 향한 지루하고 절망적인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둘만의 세계

1방문을 잠그는 조르주
2딸과의 언쟁

어느 날 불쑥 딸이 찾아와 현관 벨을 울립니다. 이때 조르주가 하는 행동을 보세요. 현관문을 열기 전, 안느가 누워있는 방문을 잠그더니, 화장실에 가서 슬쩍 물을 내리고, 딸을 집안에 들입니다. 화장실에 있는 바람에 문을 늦게 열었다고 거짓말까지 하네요. 다짜고짜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따지는 에바. 메시지도 남겼는데 왜 답이 없느냐고 화가 잔뜩 났습니다.

조르주

미안해. 메시지를 안 들어서...

에바

걱정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조르주

 

 

너희가 걱정해봐야 소용없어.

오해는 하지 마. 널 나무라는 게 아니야.

너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단 뜻이야.


그리고 악화된 안느의 상황을 설명하는 조르주. 엄마도 나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딸은 격분하죠.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방문이 잠긴 것을 보고는 완전히 폭발합니다. "아빠, 제정신이에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조르주는 여전히 침착합니다. 안느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다시 설명하면서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죠. 딸은 포기했다는 듯 힘없이 대답해요. "그래도 못 보게 막진 마세요."

둘만의 것

두 사람의 집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아주 흡사한 영화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르]는 다른 그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여러 테마들이 녹아 있지만 알고 보면 아주 단순명료한 이야기죠. 사랑은 두 사람만의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이제 와 얘기하지만 이 영화를 여는 첫 장면은, 소방관들이 아파트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안느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이에요. 그녀의 옆을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방문을 굳게 잠가 테이프까지 붙여놓은 건 조르주겠죠. 문득, 앞에서 설명했던 현관문 장면이 떠오르네요. 공연에서 돌아와 현관문이 망가진 걸 보고 안느가 말하잖아요. "우리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들어온다고 생각해봐." 조르주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둘만의 공간을 지켰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은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침범할 수 없는 가장 배타적인 공간, 두 사람이 만든 사랑의 박물관. 세월도, 자식도, 법과 윤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것. 이 사랑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映畵 名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face of love  (0) 2014.05.02
관능의 법칙  (0) 2014.04.21
노아  (0) 2014.03.29
논스톱  (0) 2014.03.07
가장 따뜻한색 블루  (0) 2014.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