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르]를 소개합니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좋아하기 힘든 복잡한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 동시에 치를 떨었어요. 언제나 '폭력', '잔혹' ,'파격' 같은 단어로 설명되는 그의 영화들. 그 온도는 굉장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없이는 불가능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는 차가우면서도 분명히 따스함을 아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지난 5월 칸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아무르]가 이전 작품과 사뭇 다른 사랑 이야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무척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이 좀 길어졌지만 이제라도 이 작품을 보게 되어 기쁘네요.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 지금껏 말 못했지만 실은...사랑합니다."
다정한 노부부
1연주회장의 부부
2망가진 현관문
3반응이 없는 안느
다음 날 아침, 안느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조르주는 전화를 걸어 현관문 고치는 사람을 불렀죠. 그런데 삶은 달걀을 먹으려던 조르주가 "소금통이 비었네?" 하는데도 안느가 꼼짝하지 않아요. 스스로 갖다 먹으란 뜻인가 싶어 일어서는 조르주. 소금을 가져오면서 말을 거는데도 안느에게선 아무 대꾸가 없는 겁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눈빛에 초점이 없네요. 순간 조르주의 가슴이 철렁합니다. 수건을 적셔 아내의 얼굴에 대봐도 반응이 없자, 이웃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절뚝절뚝 부엌을 나서요. 방에서 겉옷을 걸치던 그는, 싱크대에 틀어놓았던 물소리가 뚝 그친 걸 깨닫습니다. 서둘러 부엌에 돌아가 보니, 안느가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남편을 보네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줬지만, 안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에요.
휠체어를 타고 돌아온 그녀
1딸과 아버지
2돌아온 안느
며칠 뒤 안느는 휠체어에 탄 채로 집에 돌아오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 말고는, 예전과 다름없이 품위 있고 아름다운 아내입니다. 안느는 최대한 자신에게 생긴 장애를 무시하려는 것 같아요. 의자에 앉을 때나 침대에 누울 때는 남편에게 의지해야 했지만, 너무 살뜰한 보살핌은 필요 없다고 말하죠. 아무 일 없다는 듯 침착한 안느가 딱 하나 단호하게 부탁한 게 있었습니다.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라는 것. 부탁이라기보다는 요구였죠. 조르주는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변함없는 것들과 변하는 것들
1조르주의 이야기
2주저앉은 안느
3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안느 |
이런 얘길 왜 이제야 해? |
조르주 |
아직 안 한 얘기 아주 많아. |
안느 |
늙어서 이미지 망치면 어쩌려고 그래? |
조르주 |
안 그러도록 해야지. |
이런 시간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고,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사랑하고 노력해도 깊어지는 안느의 병을 막을 수는 없었죠. 어느 날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조르주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하는 안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요. 창문을 닫으러 왔다가 휠체어에서 미끄러져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조르주는 너무 속상한데 안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꾸 말을 돌리네요.
"왜 벌써 왔어? 장례식은 어땠어?"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그녀의 말투엔, 깊게 상처받은 그녀의 자존심이 숨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조르주는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참 듣고 있던 안느가 불쑥 말하네요.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게 뻔하잖아. 우리가 왜 같이 힘들어야 해?" "난 안 힘들어." 조르주가 놀란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내는 죽음을 바라는 걸까요? 어떻게 자기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걸까요?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사이엔 처음으로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밖에서 온 사람들
1제자 알렉상드르
2제자 앞에 선 스승
3어머니를 만난 에바
4흥분한 에바
딸 에바가 곧 귀국해서 방문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반가운 표정이 아니었어요. "난 싫은데. 조프(사위)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내 상태 보면 또 참견할 텐데." 막상 그날이 닥쳤을 때 안느의 상태는 훨씬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마비가 입까지 올라와 이제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에바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거실로 나온 에바는 아버지를 공격하죠. "저렇게 눕혀만 두면 안 되잖아요. 왜 입원을 안 시켜요?" 조르주는 침착하게 어머니의 상황과 의사들의 소견을 들려줍니다. 그래도 딸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자 이번엔 반대로 묻죠.
조르주 |
더 좋은 생각 있어? |
에바 |
요즘 같은 세상에 치료법이 이것밖에 없다니요. |
조르주
|
그럼 네가 직접 알아봐. 너만큼 나도 네 엄마를 사랑한다.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마. 그 정도 일도 처리 못 할까 봐 그래? |
조르주의 단호한 태도에 딸과 사위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죠. 이제는 손님이나 다름없는 자식들 앞에서 조르주는 딱 잘라 말합니다. "월요일부터 간호사가 주 3회 올 거야. 됐어? 이제 다른 얘기 할까?"
힘겨운 싸움
물을 거부하는 안느
둘만의 세계
1방문을 잠그는 조르주
2딸과의 언쟁
조르주 |
미안해. 메시지를 안 들어서... |
에바 |
걱정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
조르주
|
너희가 걱정해봐야 소용없어. 오해는 하지 마. 널 나무라는 게 아니야. 너희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단 뜻이야. |
그리고 악화된 안느의 상황을 설명하는 조르주. 엄마도 나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딸은 격분하죠.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방문이 잠긴 것을 보고는 완전히 폭발합니다. "아빠, 제정신이에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조르주는 여전히 침착합니다. 안느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다시 설명하면서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죠. 딸은 포기했다는 듯 힘없이 대답해요. "그래도 못 보게 막진 마세요."
둘만의 것
두 사람의 집
이제 와 얘기하지만 이 영화를 여는 첫 장면은, 소방관들이 아파트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안느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이에요. 그녀의 옆을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방문을 굳게 잠가 테이프까지 붙여놓은 건 조르주겠죠. 문득, 앞에서 설명했던 현관문 장면이 떠오르네요. 공연에서 돌아와 현관문이 망가진 걸 보고 안느가 말하잖아요. "우리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누가 들어온다고 생각해봐." 조르주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둘만의 공간을 지켰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은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침범할 수 없는 가장 배타적인 공간, 두 사람이 만든 사랑의 박물관. 세월도, 자식도, 법과 윤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것. 이 사랑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映畵 名畵'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face of love (0) | 2014.05.02 |
---|---|
관능의 법칙 (0) | 2014.04.21 |
노아 (0) | 2014.03.29 |
논스톱 (0) | 2014.03.07 |
가장 따뜻한색 블루 (0) | 201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