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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피아노의시인 “쇼팽”

藝友 2014. 10. 30. 21:54

피아노의시인 “쇼팽”

프레드릭 쇼팽 은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웠습니다. 쇼팽은 음악에 새롭고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낭만적인 신선한 공기를 흡수하면서 고전 음악의 기반을 착실히 배워 마침내는 피아노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발휘시켰습니다. 쇼팽을 두고 흔히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르는데, 이는 러시아의 작곡가며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슈타인이 쇼팽을 찬양하기 위하여 '피아노의 시인, 피아노의 마음, 피아노의 넋'이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쇼팽을 그 당시 음악의 중심 도시라 하는 파리에서 후반생을 보내면서 조국의 민족성과 향토색을 세련된 창작 수법으로 작품에 담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가 새로운 이론과 혁명적인 개혁을 단행한 것은 아니지만 외면적으로 고전 음악의 전통을 받아 들여 거기에 그의 예리하고 다감한 음악적 감정을 담아 하나의 시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비할 바 없는 매혹적인 선율에 애수를 담은 음의 구사법은 그의 독자적인 어법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조국의 민속 음악을 예술 음악으로 끌어올린 그의 공적은 크게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쇼팽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귀족적이라고 할 만한 폴로네이즈(Polonaise)의 리듬과 농민적이고 대중적인 마주르카(Mazurka) 등의 리듬과 선율이 그의 음악적인 영감의 근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작품은 대개가 즉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꾸밈음과 템포 루바토(Tempo Rubato) 등을 특색으로 하여 시적으로 표현됩니다.

200여곡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피아노곡인데, 독주곡과 소품이 많습니다. 섬세하고 정서적인 그의 곡에는 격정과 애수가 흘러 넘칩니다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회적인 불안을 피해 북쪽 나라 폴란드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연초 공장에서 회계일을 하던 그는 공장이 폐쇄된 후 스카르벡 백작의 집에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옛 귀족 출신 가정부 유스티나와 결혼, 1남 3녀를 얻었고, 그 가운데 둘째가 쇼팽이었습니다. 4세 때 피아노 기초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2세 때 바르샤바 음악 학교 교장인 엘스너에게 정식으로 작곡 교육을 받았습니다. 엘스너는 쇼팽의 독창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했는데, 이것이 그로 하여금 피아노 작곡가로서 독보적인 인물이 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15세 때 그는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출판했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습니다. 다음해는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이때 슈만으로부터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라는 극찬을 받음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 나갔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한 끝에 파리에 정착, 음악가로서 지휘를 굳혀 갔으며 3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쇼팽은 일생을 거의 피아노곡 작곡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예외로 만든 6개의 관현악곡, 3개의 소나타 역시 빛을 발하고 있고, 즉흥곡, 녹턴, 마주르카, 왈츠, 폴로네이즈 등은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곡 형식이었습니다.

새로움이 가득한 그의 곡들을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교함과 치밀한 악상을 독창적으로 사용한 쇼팽은 선배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자의 세계를 열고, 음악의 세계에 군림하기 시작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아는 쇼팽의 대표곡-폴로네이즈, 발라드, 녹턴, 즉흥환상곡 등등,,

출처 : 빼어날 秀 (수) 음악학원
글쓴이 : 원장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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