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膳物 ♬

Pablo Casals: Bach Cello Solo Nr.1, BWV 1007 (8.1954)

藝友 2014. 10. 23. 19:23


요즈음 나는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듣고 있는데  이건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곡이다.


음악이 인격을 완성하는 사례를 보여준 연주가


189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불구불한 골목. 한 헌책방에서 13세 소년이 눈을 껌뻑거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 첼로에 푹 빠진 아이의 눈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복사본이 들어왔습니다. 책 모서리가 너덜너덜했지만 악보의 음표는 가슴을 울렸습니다. 이 소년은 13년 동안 이 악보에 매달려 마침내 대중 앞에서 전곡을 연주하는 위업을 이뤘습니다.

이 소년이 20세기의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입니다. 카잘스는 프랑코 총독의 독재에 맞서 고국을 떠나 스페인 국경 부근인 프랑스의 프라다에서 거주했습니다. 스위스를 거쳐 푸에르토리코에 정착, 80세의 나이에 애제자인 20세의 마르타 마르티네즈와 결혼해서 96세까지 알콩달콩 살았지요. 그는 세계 각국에서 현을 움직였지만, 프랑코 정권과 나치를 인정하는 국가에서 연주회를 갖지 않았습니다.

카잘스는 영혼을 울리는 연주로 유명합니다. 그 연주는 도덕성에서 뿜어져 나왔다고 많은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해석합니다. 카잘스는 “음악가는 인간일 뿐이며 음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1973년 오늘은 그 고매한 인격의 연주자 카잘스가 이국땅 푸에르토리코에서 눈을 감은 날입니다. 고매한 인격이 깊은 음악을 낳지만, 깊은 음악은 인격을 승화시키기도 합니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는 “시로 감흥을 일으키고, 예로써 자기 자신을 세우고,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말했지요. 오늘, 멋진 음악에 잠겨 마음을 다스리고, 인격을 완성하는 걸음을 딛는 것은 어떨까요?    <펌>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시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에서 자신을 확립시키며, 음악에서 인간완성이 이루어진다. 

공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저 예(禮)를 엄격히 따지고, 늘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는 꼬장꼬장한 선비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오해이다. 물론 공자가 예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를 말할 때는 늘 음악과 함께 얘기를 하고 있다. 예와 음악은 음양과 마찬가지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므로 예악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게 되었다. 또한 시와 음악은 원래 근원이 같은 것이었다. 고대에는 모든 시가 음악으로 연주될 수 있었고, 모든 음악의 가사가 곧 시였다.

공자의 최대의 관심은 인간이었고, 개개인의 인간완성을 통한 아름답고 선한 사회의 실현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런데 공자는 인간완성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어』를 읽어 보면 공자가 예 이외에 시와 음악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실천했나를 잘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공자는 대단한 예술가였으며, 훌륭한 예술사상가였다.

흥어시(興於詩)란 무엇일까? 우리가 외부의 사물을 대할 때 반드시 어떤 느낌을 갖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마음이 움직인다.”(心動)고 말한다. 마음의 움직임은 말로 표현되고, 그것이 운율을 갖추게 되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제멋대로 발동되어 나와서는 안 되며, 순수한 감흥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바로 좋은 시를 통해서 우리의 감정이 절제되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입어례(立於禮)란 무엇일까? 예란 원래 분별과 질서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인간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가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운동경기에 규칙이 없으면 게임을 할 수가 없듯이 말이다. 예란, ‘남에 대한 배려’이다. 서로가 예를 지켜야 올바른 인간으로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성어악(成於樂)이란 무엇일까? 시에서 조화가 중요하다면, 예에서는 질서가 중요하다. 조화와 질서가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있다. 공자는 바로 이러한 음악의 경지에서 비로소 인간완성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으며, 꼭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심(詩心)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가 음악가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좋은 음악을 감상하거나 간단한 악기라도 하나 연주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워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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