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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향곡의아버지“하이든”

藝友 2014. 10. 30. 21:55

 

 

 

교향곡의아버지“하이든”

요제프 하이든은 18세기 후반의 빈 고전파 양식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입니다.

연주단체 규모가 큰 4개 악장 스타일의 교향곡과 현악 4중주를 확립하는 데

가히 아버지 역할을 한 작곡가입니다.

성품이 원만해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까지 얻었고,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작곡가였습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에 위치한 로라우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가난한 대장간집 아들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다섯살 때 막대기를 턱에 끼고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곧잘 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6세 때에는 마을 교회 합창단에서 미사곡을 불렀고,

피아노의 전신인 클라비어와 바이올린도 조금씩 켰습니다.

이 무렵의 하이든은 초등학교 교장인 프랑크라는 사람에게 음악 교육을 받았는데,

밥 먹는 횟수보다 매를 맞는 일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8세 때 그는 지금의 빈 소년 합창단의 전신인 성 슈테판 소년 합창단에 입단해 활동했는데,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인 카스트라토가 될 뻔할 정도로 목소리가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변성기가 되자 합창단에서 해고됐고,

10년간 프리랜서 음악가로서 무지무지하게 고생도 했습니다.

난로도 없는 다락방에서 저녁 때가되면 몇몇 동료 가난뱅이 음악가들과 남의 집 창밑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해 주고 동전 몇 푼 받아 오는 생활이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29세가 되던 해인 1761년, 헝가리의 호족 에스테르하지가의 전속 음악가로 고용되면서

하이든에게는 행운이 뒤따랐습니다.

당시 유럽 최대의 재산을 가졌던 에스테르하지 공작은 그에게 세상과 단절된 대저택에서

단원들과 함께 기거할 수 있게 해주는 친절을 배풀었고,

이에 하이든은 30년간이나 이 곳에서 작곡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34세 때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올라간 후로는 우수한 관현악단을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갖가지 실험적 작곡을 끊임없이 해나갔습니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런 일은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거성이 수도 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말 많은 평론가들의 시달림을 받을 필요 없이 자기 소신대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후작의 죽음으로 자유의 몸이 된 하이든은 영국에서 매니저 활동을 하던 잘로몬의 초청을 받아 그

곳을 방문하면서 열 두곡의 교향곡을 발표했고,

이 곡들은 일명 '잘로몬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에서의 그의 성공은 대단했고,

큰 성공을 거두어 극진한 대우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영국에의 귀화도 간곡히 권유받았으나 끝끝내 사절하고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수입도 많아 여생을 행복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 베토벤과 함께 빈 고전파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하이든은

108곡의 교향곡, 84곡의 4 중주곡, 4개의 오라토리오,

34개의 가극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더군다나 '교향곡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하이든은 소나타와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하여

오늘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무엇이든 포용하는 대범함과 인생을 즐기며 기뻐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100명이 넘는 제자들을 양성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았던

그의 온화한 성격 때문 일 것입니다.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그는 당시의 빈과 런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늘날 모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까지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아는 하이든의 대표곡

놀람교향곡, 잘몬교향곡, 천지창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