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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악의 어머니 헨델

藝友 2014. 10. 30. 21:55

음악의 어머니 헨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은 J.S.바하와 같은 해에 동부 독일의 할레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바하보다 9년 더 살았습니다. 바하와는 동갑이면서도 서로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헨델의 선대에는 부계나 모계 어느 쪽에도 음악가라곤 없었고, 바하가 평생 독일 밖에는 나가본 일이 없는 시골뜨기였다면, 헨델은 유럽 각국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코스모포폴리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고 싶다는 뜻은 밝힌바 있으나 실제로 대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헨델은 18세 때, 고향을 떠나 당시 독일에서는 유일하게 오페라 극장이 있던 함부르크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오페라 수업을 하던 중 그는 평생의 악우(樂友) 요한 마테존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곧 절친한 벗이 되었지만 똑같은 성격이 격해 간혹 격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이탈리아에 가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를 습득한 헨델은 자기 오페라를 알아 주지 않는 모국 독일에 실망해 근대화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던 영국으로 귀화 합니다.

그는 이름도 영국식으로 '조지 프레데릭 한델(Geroge Fredric Handel)'로 바꾸었습니다만, 성(性)만은 독일식대로 '헨델'로 발음해 달라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도 그의 오페라는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오라토리오 작곡가로 전향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불후의 명작 오라토리오'메시아'의 '할렐루야 코러스'대목에서는 마침 임석 중이던 조지 2세가 감격한 나머지 기립하기까지 했다하여 오늘날에도 그 대목에서는 청중 전원이 기립하는 관습을 지키는 나라도 있습니다. 헨델은 영국 왕실을 위해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등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들은 장대하고 명쾌한 특성으로하여 대중들로 부터도 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헨델은 74세의 장수를 누린 끝에 전 영국국민의 애도를 받으며 운명했고, 유해는 그들의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웨스트민스터의 사원에 묻혔습니다. 그가 영국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도 지대하였기에 영국에서는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작곡가가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약 1백여 년이나 지난 뒤에나 겨우 엘가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헨델은 남자인데 왜 음악의 어머니 라고 불리게 된걸까요?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가 된거에는 크게는 바흐가 큰 몫을 했지요.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된거 역시 낭만파때 도이치(독일 오스트리아)문화권의 작곡가들이 상당하게 힘을 얻었습니다. 거의 음악하면 도이치 이랬으니까요. 그때 어느정도 도이치음악에서 영향력이 있던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많이 조명합니다. 덕분에 바흐는 주목 받게 되었고, 멘델스존을 비론한 도이치 작곡가들은 대선배인 바흐에게 음악의 아버지 라는 별칭을 준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 바흐와 동시대 인물인 헨델도 주목을 받았죠. 헨델은 바흐와는 음악적색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이니 헨델에게 음악의 어머리라 별칭을 지어 준것이지요. 사실 헨델도 도이치태생이지만, 그는 거의 일생을 영국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영국 작곡가라고도 무방할 정도이지요. 바흐와 출생지 덕분에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헨델의 대표곡 - 메시아, 왕궁의 불꽃놀이등등,,

출처 : 빼어날 秀 (수) 음악학원
글쓴이 : 원장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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