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19세기 이 세 거장의 로맨스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브람스의 후손으로 알려진 헬마 잔더스 브람스 감독의 영화 [클라라]는 이런 브람스의 고독을 보여준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가 반대하는 결혼을 6년이라는 긴 법정 공방을 거친 끝에 소송에 승리하여
결혼에 성공을 하게 된다는 내용은 많은 애호가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남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클라라의 슈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영화는 클라라와 슈만이 기차를 타고 연주 여행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의 행선지는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클라라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로 깍 들어차 있는 연주 홀 한구석에서 한 젊은이가 클라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사람은 바로 브람스다.
그는 슈만과 클라라가 함부르크에 온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악보를 들고 슈만을 찾아왔다.
유명 작곡가인 슈만의 인정을 받으면 작곡가로 성공하는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브람스는 슈만 부부에게 자기 악보를 보여준다.
슈만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클라라는 그가 선술집에서 왈츠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젊은이라고 생각한다.
10년 후 슈만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고,
라인 강변에 이사 하게 되며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을 영위하면서 교향곡 3번 [라인]의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은 수월하게 진행되었지만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는 일은 삐꺽거리고,
작곡은 잘했지만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는 지휘자로서는 어려움을 겪던 슈만이
[라인 교향곡]의 1악장을 연습시키는 장면이 나오지만
결국 클라라가 대신 지휘봉을 잡고 단원들을 연습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에 대한 단원들의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로 그 무렵, 브람스가 슈만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직접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의 악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클라라는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천재성에 감동을 받는다.
슈만 역시 브람스의 음악에 매료된다.
이때 브람스와 슈만이 클라라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작곡한 [로망스]를 연주하는데,
슈만, 클라라, 브람스 세 사람 사이에 구축된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감, 서로의 예술에 대해 공감이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날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을 권유하지만 그 자리에서 브람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 좌우명을 아세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저는 자유로워야해요. 새처럼."
그 후로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 한 가족처럼 지낸다.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다정한 삼촌,
클라라에게는 언제라도 달려와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 슈만에게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예술의 동지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는 슈만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1853년 2월, 슈만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학고,
그 소리는 때로는 천사의 소리로, 때로는 악마의 소리로 변해
영화에서는 정신이 반쯤 나간 슈만이 클라라를 때리고,
나중에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1854년 2월 17일, 슈만은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를 주제로 변주곡을 작곡한 후 집을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는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 라인 강으로 갔다.
그리고 강물에 미련 없이 몸을 던진다.
어부가 그를 구조했지만 그때 이미 정신의 톱니바퀴는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그로부터 9일 후인 2월 26일, 슈만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집을 떠나는 날, 슈만은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클라라에게 말한다. 브람스에게 오게 하라고.
슈만이 정신병원으로 가고 난 후, 클라라는 혼자 아기를 낳는네, 그때 브람스가 클라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은 클라라와 아빠를 보내고 쓸쓸해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준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돌보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사랑하는 여인이자 음악의 동반자였다.
브람스는 자주 새로운 작품의 악보를 클라라에게 보여주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으며, 브람스는 그녀의 격려에 큰 힘을 얻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늙어갔다.
브람스의 삶에서 클라라의 존재는 그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위대한 예술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896년 5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가 죽은 후 브람스의 건강도 갑자기 나빠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안 된 1897년 4월, 브람스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클라라보다 14살이나 어린 그였지만, 그의 음악적 나이는 클라라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클라라의 죽음으로 음악가로서 브람스의 삶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이 대개 화려한 도입을 자랑하지만 이 곡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결혼과 같은 세속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자답게’ 지켜주었던 진짜 사나이 브람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있으면 이런 브람스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지만 각각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시기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자면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은 나이 듦이 가져다준 안온함 저 편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