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삼성병원] '자기애' 라는 말은 자칫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아마도 자기애라는 말과 같은 의미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어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소스(또는 나르키소스, 나르시스, Narcisse)라는 말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르시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자기 모습만 바라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붙잡으려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유교적 사상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이타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가 있어서 '자기애적'이라는 말은 '자기중심적' 또는 '이기적'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져서 더 부정적으로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부분 '너는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꽤나 싫어하지 않는가.
물론 자기애의 정도가 심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소중한 자신의 다리가 아프지 않도록 남들을 밀쳐내고 먼저 자리에 앉는다거나, 다 같이 일을 분담하는데 혼자서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예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한다거나 하는 등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일도 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자기애도 있다. 내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떠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혀도 아이를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탓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위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의 변형된 모습이다.
그럼 자기애는 없애버려야만 하는 나쁜 것일까? 사실 자기애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의미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자기애가 지나치게 부족한 사람은 매사에 자신을 탓하거나 부정적이다. '역시 난 안돼',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해봤자 어차피 안 될 텐데'라면서 열심히 노력도 해보지 않고 부정적 결과만 예상하며 원하는 만큼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하는 일이 많다. 연인 관계에서도 '저 사람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에 끊임없이 불안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과도하게 다른 사람 입장에만 맞춰주고 자신이 자질구레한 일을 떠안다가 결국 화가 나고 그러한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연인이 바빠서 연락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불안하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여기까지이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나치게 힘들어질 때까지 일을 떠안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결국 자신이 노력한 만큼 이루어질 것임을 알기에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자기애는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습득하기 전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적절한 발달을 해나가면서 자기중심적 사고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뀐다.
그러나 발달 단계에서 자기애의 발달이 정상적이지 않고 과도하거나 부족하다면 자기애가 과도해 이기적인 사람이 되거나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아서 마음이 늘 힘든 사람이 되기 쉽다.
내가 지금 적절히 나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게 평가하는지 살펴보자. 나 자신만을 너무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자. 이러한 통찰 속에서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다면 대인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한층 줄어들 뿐 아니라 혼자 있어도 불안하거나 외롭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칼럼니스트 : 황소영 전문의(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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