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자신이 천재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거장의 마음은 서운하지 않았을까? 이를 대변하듯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는 넘치는 분노와 열정이 표현된 곡들이 많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들을 때면 그의 복잡한 심사가 그려지듯 짚어진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Piano Sonata No.17 Op.31-2 ‘The Temp est’)는 1802년 작곡됐다. 베토벤이 평생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평균율과 함께 피아노 음악의 금자탑으로 손꼽힌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는 31번의 세 곡 중 두 번째 곡이다. 이 곡이 작곡됐던 당시는 귀가 멀기 시작한 베토벤이 절망의 늪에 빠져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던 때. 조수였던 신들러가 이 곡을 이해할 단서를 달라고 하자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폭풍우)’를 읽어 보라고 했다는 말 때문에 템페스트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단 하루의 짧은 시간 동안 외딴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리 길지 않은 희곡 작품이다. 밀라노의 대공(大公)이던 푸로스퍼로가 동생 앤토니오의 욕심으로 인해 공국을 빼앗기고 어린 딸과 함께 무인도에 버려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우연한 계기에 마법의 힘을 얻게 된 푸로스퍼로가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갈등, 고뇌, 분노를 억제한 대신 용서와 화해라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소나타 템페스트를 만들었던 베토벤의 무게중심도 ‘분노’보다는 ‘화해’였을까? 답은 ‘Yes’인 것 같다. 우리가 베토벤을 ‘악성(樂聖)’으로 추앙하는 이유는 그가 평생을 발목 잡았던 고난과 불운을 딛고 일어선 거인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평범한 인간들로선 가늠할 수도 없을 고통을 극복하고 용기와 화해,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환희(joy)’를 우리에게 제시한 존재가 아니던가. 이런 메시지는 원작의 내용이 간결한 만큼 곡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음들로만 구성된 템페스트를 듣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3악장은 숨 막히게 도전해오며 격하게 터지는 불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스페셜리스트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년)의 유독 숨 가쁜 터치를 듣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화가가 시력을 잃었다면 이는 그에게 최대의 형벌일 것이다. 음악가가 청력을 잃었다면 이 또한 다르지 않을 터. 보통 사람이라면 무릎이 꺾이고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 다른 것은 시련에 대처하는 자세. 베토벤은 그런 어마어마한 시련 속에서도 음악을 잃지 않았고 존재를 상실하지 않았다. ‘잃었거나’ ‘빼앗겼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작품을 통해 격렬한 용기로 웅변한다. 삶이 격하게 요동칠 때, 가끔 길을 잃고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대할 때 이 음악을 권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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