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둔 窓으로 아침햇살이 제 멋대로 쳐 들어와 아침 잠을 깨우면
서쪽 窓으로 길게 들어서는 늦은 午後의 여름 햇살에
나의 하루는 어찌 이리도 번개처럼 지나 가는지 도무지 억울하고 견딜 수 없는 悔恨이 생긴다.
<2015. 7.12 > 위 寫眞은 大田가던 날의 高速道路 風景이다,
장마권에 들어온 日氣지만 마른장마가 계속 되더니 마침 먼 길을 떠나던 時間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차를 몰고 사는 곳을 떠나 어딘가로 달린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먼 곳을 떠나려 할때 혼자일 때가 난 참 좋다.
외롭지 않느냐고, 쓸쓸하지 않느냐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홀로 旅行은 많은 것을 잠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機會이니 客觀的으로 바라 볼 수 있고
自身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에 대한 刷新을 할 수도 있으니 홀로 旅行은 참 좋다.
요즈음, 홀로 旅行을 다녀왔던 時間이 때로는 그립기도 하지만 ,
그래도 누군가랑 함께 할 수있는 여행은 길든 짧든 慰勞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밖의 風景이 흐트러져 보이는 위 사진 처럼
늘 반듯하게만 살아야 한다는 나날이 때로는 구겨져 보일때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처럼 말이다.
그날, 車窓을 흐르는 빗물이 참으로 내 마음 같았다..
울음을 참고 있을때 누군가 곁에서 작은 慰勞라고 해주면 그만 慟哭을 하게 된다.
울고 싶은 아이는 울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눈물의 자기 治癒力을 나는 믿는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때로는 울어야 한다.
눈물은 몸과 마음과 靈魂을 씻어내는 빗물이기 때문이다.
"눈에 눈물이 있어야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라는 詩人 류시화님의 싯귀가 떠 오른다.
어제의 황당했던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자주 아니 가끔 혼자만의 앓이로 눈물을 쏟아낸다.
그렇게 자주 울고, 많은 눈물을 쏟아내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世波에 시달려 살아온 還甲의 나이에도 왠 슬픔은 그리도 많이 남아 눈물을 흐르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울고나면 저 밑바닥까지 몽땅 비워낸 것 처럼 개운해 지는게 확실히 治癒力이 생기는 것 같다.
그날 그렇게 運轉을 하고 가면서 가슴 속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사는 이곳은 하늘이 온통 흐리고 곧 비가 뿌릴 기세지만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물을 보지 못한 降水量이 얼마 되지 않은 마른 장마기간이다.
그래도 21층의 아파트라 집안의 창을 열어 두면 맞바람이 스쳐 ,
앉아 있다보면 더위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보낼때가 많다.
濕度가 높은 더위 때문은 아니지만 요즘 外出이 거의 없다.
저녁을 먹고 집 앞 호수공원을 한시간쯤 걷는 運動외는 마트에 장 보러가는게 전부다.
오늘은 그동안 찍어둔 寫眞을 보면서 자르기도 하고, 내 싸인도 제작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 사진을 보노라면, 그날의 追億이 되 살아나 얼굴에 미소가 흐르기도 한다
知的 호기심은 內的 젊음을 뜻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好奇心과 熱情이 사람의 知的 內面을 젊게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던가.
冊을 읽고, 音樂을 듣고, 좋은 사람과 旅行을 하고 藝術을 접하게 됨은 지적 젊음의 징검다리다.
그 징검다리를 건너며 오늘의 삶이 未來로 새롭게 이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늘 한가롭지만 오늘은 이렇게 주절주절 마음을 나열해 보는 알찬 時間을 갖는다.
담양가던 시골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風景이다.
어느새 하늘은 가을을 느끼게 하고 뭉개구름을 품고 있다.
삶도, 위 寫眞처럼 늘 平和롭게 살 수는 없을까?
그런데...
삶이 늘 고요하다면 그 삶 뒤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거짓이 있을 것이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이고, 적당히 소리를 내고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 아닐까....
가끔 흔들려 보고,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봐야 그 과정 뒤에서 오는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흔들리는 마음과 자판을 두둘기는 內面의 두 마음을 안고 이 時間을 보내고 있다.
그냥 感謝로운 날이다. 감사 하는 마음은 품고 사는게 아니라 表現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감사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나의 終末이 올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