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樂膳物 ♬

쇼팽의 첼로소나타중 3 악장

藝友 2016. 9. 28. 12:37

 

< 한강 라이딩하던 날, 저 뒤쪽에 어느 가족들이 펼쳐놓은 아담한 공간이 눈에 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첼로 소나타를 하나 썼는데 선율이 풍부하고 쇼팽다운 시적, 서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곡이다.

쇼팽의 실내악 작품중 마지막으로 출판된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드와 헤어져 파리로 돌아온 이후 어느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 했다고 한다.

 

이 음반에서 첼로를 맡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티고르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후 20대 중반 무렵부터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루빈스타인, 하이페츠와 함께 RCA레코드사를 통해 많은 음반을 남겼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언제나 단정한 차림새에 온화하고 신사적인 풍모를 지닌 격조 높은 비르투오조 였다.


 

쇼팽과 상드의 연애담은 워낙 유명한데 이런저런 잡문들을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쓸데없이 많이도 읽었다.

순수하고 섬세한 심성을 지진 청년 쇼팽이 그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 연상의 이혼녀 상드에게 낚여

연애를 시작했고 처음엔 상드가 하도 적극적이어서 시작된 관계였지만 만남이 이어지면서

쇼팽은 그녀에게서 모성애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어 마침내 상드 없이는 못 산다는 지경까지 간 듯하며,

상드가 남성편력이 많고 진보적인 성향의 화려한 여성이었음에도

나약한 폐병환자 쇼팽과 무려 10년이나 함께 지냈던 건

쇼팽에게서 그 어떤 예술적 영감을 섭취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가 싶다.

 

당시 상드는 위고, 들라크르와 등 당대의 지식인들과 문학적, 예술적 토론이 가능했던

매우 보기드문  여류 작가 였다고 한다.긴 투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

쇼팽의 병세가 깊어지며 결국 좋지 못한 모양새로 헤어지게 된 것으로 보이며

쇼팽이 죽을 때 상드는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쇼팽이 사십년을 채 못 살고 죽었는데 예술적 황금기의 10년을 상드와 살았으니 쇼팽을 이야기 할때 상드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쇼팽과 상드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리스트와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다구 백작부인 얘기도 나올 수밖에 없는데

쇼팽과 리스트가 친구였고 쇼팽과 상드가 처음 만난게 다구부인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

다구 부인도 상드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교계를 주름잡던 인기녀였다는데 상드의 부탁을 받고 쇼팽과 상드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불륜이었던 리스트와 다구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코지마가 어머니의 바람기를 물려 받았는지 훗날 남편 친구인 바그너와 눈이 맞아

어쩌고 저쩌고 했던건 ...또 다른 얘기고.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오나시스라는 상인과의 연애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찬란하게 들리듯 ,

그 수정처럼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이 이런저런 에피소드로 폄하 될순 없다.

 

화가였으나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들라크르와는 쇼팽이 묻히고 한참이 흐른 후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대체 누구와 함께

쇼팽과 같은 천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늘이 우리에게

마지못해 보내준 사람...

이젠 그를 볼 수 없고

그 고귀한 멜로디를  들을 수 없기에

그가 몹시도 그립구나...


Chopin Cello Sonata in G minor Op 65 No 3 Lar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