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붉은 하늘을 바라본다. 체감온도까지 더해서 영하 10여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 하늘은 푸르고 노을은 짙다.
노을을 바라보며 오늘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안도감과, 또 하루를 놓쳐버렸다는 서글픔의 두 마음이 내 안에 공존한다. 한정된 시간속에서 바라보는 이 저녁노을을 언제까지, 그리고 몇번이나 더 바라볼 수 있르려나... 한정된 시간속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그렇기에 더 목말라 하는 아름다움이리라...
나는...나는 영원히 살기를 꿈꾸지 않는다.. 끝이 없는 삶속에서 , 그 끝이 없는 시간속에서, 끝이 없이 살아가야할 그런 존재는 되기싫으니.. 인간에게 있어 저녁노을이란 정해진 시간속에서 정해진 만큼만 누릴수 있는 아름다움인것을..
해가 저 너머로 사라진 후 그 잔영은 더욱 아름다울것이다. 오늘도 나는 붉디붉은 해가 남기고 간 그 황홀한 빛의 가루를 고스란히 내 안에 , 내 눈에 가두어 둔다.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운 노을 빛에 현혹되어 잠시라도 내안에 가두어 놓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간직하지도 못할것을 알면서, 그러면서도 이 아름다움을 가두고 싶은것이다. 내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가두어 두면 마치 내것이 될것처럼....
흐리다가, 비가 내린다. 나는 어릴때부터 비를 좋아 했다. 엄마가 사주신 하양 고무장화를 신고 물 웅덩이를 밟으며 뛰어 다니는것도 좋았고.. 큰 소리로 " 비온다 빨래 걷어야지! " 하셨던 엄마의 음성도 귓가에 쟁쟁하다. 사춘기 시절엔 비 내리는 날에 대한 <낭만> 뭐 그런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충만했던 사춘기 그 시절에 빗소리를 들으며 일기장에 낙서도 하고 "戀書"도 나열하곤 했으니 말이다. 가끔은 캄캄한 밤, 아주 고즈녁한 밤에 들릴듯 말듯 들려오는 그런 빗소리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었지.. 그렇다고 <비>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은 없는데.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 여유롭게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애잔하게 흩날리는 빗줄기를 촉촉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가끔은 차를 몰고 빗속을 가르며 달리기도 한다. 아, 이 비가 그치면 잔설도 녹아 없어지겠지?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것은 보지말고 꼭 필요한 것만 쳐다 보라는 것이며, 나이가 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은것은 꼭 필요한 말만 들으라는 것이요, 정신이 깜박 거리는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고 잊으라는 것이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이렇듯 오감의 기능은 무디어져만 간다. 오감의 기능이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이 세서 자신과 이웃에 대한 촉각이 무디어져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보며 늘 못마땅해 하며 잔소리만 늘어간다면 남은 인생은 평탄치 않을 것이다라고..
흔히들, 나이가 들면 입은 다물고 주머니는 열어야 사람이 붙는다고 하는데, 주머니뿐만 아니라 마음을 열고 내 의지를 더 내려 놓아야만 어른대접을 받고 행복한 노후가 될수 있다는데... 나이 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친구처럼 같이 놀 사람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긴긴 세월을 보낸단 말인가. 나이들어 마음을 연다는 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마음을 연다는것은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인생을 얼마나 더 살겠다고, 바른소리만 하고, 소신있게 말 하고 자로 잰 듯 바늘로 찌르듯 공격적인 말을 하게 되면 옳은소리 한다며 좋은소리 들을지 몰라도 마음 깊숙한 담은 더 높아만 간다. 얼마나 더 나이 먹어야 알아도 모른척 똑똑해도 어수룩한척 한단 말인가.
난 아직도 거울을 쳐다볼 때마다 내 인생의 가장 격동기였던 20대의 얼굴을 떠 올려본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보고 찾아봐도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더 퇴색해지기만 한다. 세월은 그런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젊음을 떠나 보내고나서 .. 나이들어도 겁을내지 않는 이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것이다. 나의 삶은 작은 기적이다..
산책하던 중에 일하다 말고 급히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어느 님의 웃옷을 발견하다.. 외로움이란 이런 것 아닐까... 텅빈 공간에 혼자 남겨졌다고 외로운건 아니다.그건 잠시의 고요다. 누군가 해주는.. " 난 네가 필요해!" 라는 말처럼 감미로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역할이 큰걸 의미 하는건 아닐것이다 . 그냥 "옆에만" 있어 주어도 편한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지하며 기댈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것은 또한 그런 존재가 된다는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신의 모든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진정한 필요한 존재 아닐까... 필요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것일게다 측은지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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