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여름 같다고 하기엔 꽤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나뭇잎 색이 바래고 잎을 떨구면 우리는 어느새 겨울 준비를 해얄 것이다.
자연은 그게 언제든 다 제 때에 맞추어 잘 흘러가는 것 같다.
소슬한 바람에 한기를 느끼며 긴 연휴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며 ...
오늘 아침은 조개껍데기 주워들어 실에 꿰듯 그리움 하나 둘 꿰어본다.
그리움...
그리움이란 말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詩가 된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가슴속에서 당장 울컥해지는 슬픔이 쏟아진다.
그리운 명절..
이렇게 제목을 정해놓고 한참 글을 잇지 못하고 있다.
그립다는 것은 보고싶음의 두배 정도는 될 것 같기에......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명절만 되면 " 명절증후군" 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온다.
<명절 증후군은 대한민국에서 명절이 다가왔을때 가사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주부들이 겪는 현상이다.
실제 병은 아니며 심한 부담감과 피로감이라는 증상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주로 맏아들의 며느리거나, 같이 할
형제, 자매가 없는 집의 주부들이 음식 장만 및 설거지 등 뒤처리에서 평소보다 늘어나는 가사를 매년 겪기 때문
에 발생한다.>라고 씌어있다.
방송, 인터넷, 신문 등등에서 이런 보도를 하기전까지는 명절이 다가오면 좀 힘들다고 푸념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여자들은 피켓을들고 농성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 <명절이 그립다.>
힘들게 찾아갔던 시댁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도착했던 동서네도, 반갑게 맞아주시던 시어른들도 보고싶고,
말한마디 따뜻하게 건네지 않던 얄미운 시누이들도 보고싶다.
대가족으로 큰 살림을 맡아 하시던 <형님의 노고> 를 조금이라도 더 헤아려 드릴것을...하고 진즉에 후회를 해 봤지만
번잡하고 수선스럽게 생각했던 명절은 이제 내게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둘째 아들의 며느리로 시댁에 가면 첫째와 막내에 치여 씽크대 설겆이통에서 젖은 손 마를 시간이 없었지만
그건 잠시 몇날의 힘듬이었을 뿐이지 한번도 하기 싫다거나 짜증내지는 않았다.
모든 준비가끝나고 나면 동서들과의 오붓한 대화가 이어졌었고, 시어머님을 위시해 며느리들끼리만 고스톱판을 벌이기도 했던
자잘한 낭만도 있었기에 서둘러 일을 끝내고 가족간의 화합의 장을 고대하기도 했단 말이다.
아, 시댁엘 가려면 서울에서 특급열차가 8시간이 소요됐던 때도 있었다.
어린아이를 안고 우유병과 기저귀를 챙겨 택시를 타고 서울역을 향하려면 택시기사 양반이 <이사 가느냐고> 은근히
얄미운 멘트도 던지던 시절...
그후 새마을호가 생겨서<대전>에서 <여수>까지는 네시간이 걸렸지만..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때면 우리가족은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힘들다고, 멀다는 핑계를 대면서 단한번도 명절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이른 새벽같은 아침에 <시어머님> 을 따라 어시장에 나가곤했다.
여수에는 물좋고 맛난 이름모를 생선들이 참 많았다.
육고기 보다도 더 비싼 생선을 사시는 어머님은 가격을 깍는 요령도 수준급이셨다.
그때는 아유, 왜 저렇게 까지 하시나 했는데 나이가 들어 몇해를 그리 지내다 보니
어머님과의 시장 풍경이 참 재미나기도 했다.
그런데..시장 바구니에 가득 사놓은 생선들을 보라.. 잔뜩 물기에 젖어 있으니 얼마나 무거운가..
그걸 낑낑대며 들고 유유히 시장을 누비시는 어머님 뒤를 따르는 나를 ....
지금, 그 어머님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나는...
전을 산더미 같이 부쳐서 소쿠리에 담아 냈고
시어머님의 부르심에 종종 걸음을 쳤고 , 형님의 하달에 군 말없이 행동했고..
아랫동서의 <저 이것 못 하는데 형님이 좀 해주세요..> 하던 말에 많은 것을 대신 하곤했다.
그 모든 명절의 풍경들이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어 눈을 감으면 그리움이 되어 떠 오른다.
그렇게 함께 했던 대가족이 이제 한곳에서 만날수 없는 현실이 되고 보니..
어느것 하나 그립지 않은게 없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셔서 시댁에 갈 일도 생기지 않고 ,
명절이면 내 위주로 우리 가족간에 조촐한 명절을 보내고 만다.
<아가>라고 불러 주시던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몇날이고 먼저가서 이런 저런 명절 준비도 도와 드리고 싶다.
모든것은 지나고 나면 후회 스러운 법, 그래서 내게 주어진 것들에 순응 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불만과 불평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고 말지..
그래서,
내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
내가 살아 있음으로 내게 다가온 것들에 충성하며 살아 갈 것이다..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