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友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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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友 2019. 12. 26. 21:22

          


          

            < 2019. 5. 스위스 리기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노년을 만나다. >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을 상대로하는 媒體를 굳이 '公器' 라고 부르는 까닭은

          공공성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담당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인 것같다.

          내가 TV 를 보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고 방영하는 날짜나 요일을 기억하고 제시간에 

          찾아서 보는 프로도 많지않다.


          드라마는 이야기의 연속성 없이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걸려드는 화면을 보는데

          방영되는 티비프로는 거의가 먹방, 예능, 혼자사는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

          그리고 홈쇼핑이 전부다.

          출연하는 사람들도 거의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 티비 프로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소수의 그들 뿐이던가? 의아심이 생길정도다.


          그렇더라도 익히 보고있는 채널의 방송 뉴스시간에는 TV 에 눈을 맞추고 세상일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한다

          며칠 씩 울궈먹는듯한 시답잖은 내용이 도무지 무엇 때문에 날마다 톱 뉴스가 되는지 알 수 없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 우리 세상인데, 지방 소도시 어느곳에 작게 불이난 이야기며

          서울시내 어떤 곳에서 달리던 자동차와 신호를 무시하고 U 턴하던 오토바이가 충돌했는데 

          부딪친 배달청년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며 뉴스 진행자와 현장 기자가 

          긴장감있게 보도하는데 그것이 무슨 뉴스감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군다나 누가 이혼을 했고, 결혼을하고, 첫애를 낳는 산실까지 들어가 보도를 하고 있는데

          그런게 어찌 뉴스감이 되는지 전업주부도 한참 전업주부인 내 시선에도 시답잖은 내용으로 치부되고만다.

          오늘은 어느 여배우의 손에 낀 반지를 가지고 재 결합을 하니마니 하는데 한심하기 그지없다

          장년의 가수가 젊은 어느여자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성폭행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뉴스로 며칠을 울궈먹는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말을 들은지가 언제부터인데 여,야 정당은 아직도 뭉기적

          거리고 있을뿐더러 일반 국민이 이해하고있는 개정 선거법이 어떻게 되는지  헷갈리고 

          이해할 수 없으니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일반 국민들 거의 대부분은 지역구, 비례대표, 

          연동형 비례, 석패율 등등 선거법 내용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 들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뉴스도 안보고 살 수 없다하여 귀를 쫑긋해서 듣고, 보면 볼수록 속 시끄럽고 답답증만 커지는 것 

          같으니 어찌 해얄지 모르겠다. 답답증이 아니라 나는 통 모르겠다.


         우리집은 그래도 조간을 구독하고 있다.

         대문짝만하게 실려진 타이틀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찌 이해 할 것인가?

         조간을 샅샅히 훑어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면에 두루 박식하다고는 못해도

         나름 세상사에 밝다고  인정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가끔 가뭄끝의 단비처럼 美談이 방송되기도한다.

        방송에서  '장발장 이야기' 라고 이름 지었는데 생활이 너무 곤궁한, 몸이 성치않은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먹이려고 가게에서 사과 몇 개와 우유를 훔치다 들켰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60대 모르는 어른이 그 父子에게 20 만원을 쥐어주었더니

        가난한 아빠는 아들을 시켜 기어이 돈을 돌려 주려하고,

        가게 주인은 물건 훔진 잘못을 묻지 않겠다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다.


        그런 일도 방송매체가 '공기' 로서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대한 것 보다 훨씬 큰 

         보람이되고 여운이 오래 남을 것임이 틀림없지만 

         그런 미담 역시 세상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고있는 일이니 뭐 그리 대단한 뉴스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허나, 지지리도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소식이 질펀한 정치권의 이야기나,

          머릿속이 뒤숭숭해지고 뱃속을 매스껍게하는 소식보다는

          짤막한 따뜻한 이야기가 메마른 우리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건 사실이다.


          옛날엔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거의 신년을 맞이 할 때까지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졌었는데

          요즈음엔 캐럴 음반의 저작권인지 뭔지 때문에 그것도 안된다하여 성탄절 기분도 半減되었다.


          12월 26일 성탄이 하루지난 날이다.

          창 밖이 고요하다.

          눈이라도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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