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友 이야기

추억召喚

藝友 2020. 4. 14. 18:25




총선의 계절에 이르니 곳곳에 선거 현수막과 플래카드가 걸린다.
내가 알기로는 각급 선거에 따라서 후보자를 알리는 벽보와 크고 작은 전단지뿐 아니라

후보자 명함의 수량과 세로 걸이 현수막, 가로 걸이 플래카드의 규격과 수량의 上限이 정해져 있고

모두 선관위의 사전 심사를 거쳐서 나누어주거나 걸거나 붙일 수 있다.

벽보나 전단지에 후보자의 학력 이력 기타 사항에도 거짓이 적혀있다면 설사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라도 당선무효에 이르기까지 엄한 규제를 받는다고 난 알고 있다.
별의별 캐치 워드가 등장하고 유권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현수막이나 플래카드를 걸기 위한 경쟁도 벌어진다.

나도 나이를 더하게 되니 정치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전국에 국회의원 지역구만 253 개에 이르니 별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득 나의 소녀 시절의 일이 생각난다.

내 아버지께서도 현재의 지방자치제 이전 옛날 이승만 정권[5.16 이전]에서

지방의회 시의원과 도의원에 몇 번 출마하셨고 당선되셨으며 국회의원까지 하셨으니
선거 때가 되면 우리 집은 온통 난리 굿판이 되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전단지를 들고 거리에서 나눠주시고
웅변에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던
큰 오빠는 지프차를 타고 확성기로 선거운동에 동참하곤 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쯤이었던 나는 하교 후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공터 연단에 서서 유세에 열을 올리시던 아버지를 보면
괜히 창피한 마음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뭐 그런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플래카드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두꺼운 무명 천을 재봉틀로 잇대어 붙여 만들어서 기호, 성명,

정당 이름 등을 일일이 굵은 붓으로 써서 바람에 날리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줄을 매어 곳곳에 걸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만들어 걸 수 있었고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선거가 끝나고 플래카드의 활용(?)과 관련한 이야기다.
철거해온 플래카드는 그것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그 플래카드의 글을 지우려 하는데 油性 페인트 글이니 어떤 방법으로 옅어지게 했는지는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고 무명 천을 양잿물과 함께 여러 번 삶아내고

날 좋은 날 햇볕에 내놓고 탈색을 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다음 쓰임새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어머니께 수없이 들어 알고 있다.

우선 페인트 기운을 완전히 뺄 수는 없으니 그런대로 보드라워진 천은 물을 들이기도 해서
아이들 침구의 요 이부자리의 겉판으로 쓰이기도 했고
염색이 안된 무명 천의 일부는 사내아이들의 펜티나 반 바지감으로 활용되었다는
오빠나 남동생들이 둘러앉으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했다

페인트 질감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무명천으로 어머니께서 팬티를 만들어 주시니 안 입을 수 없었고
살갗에 닿는 야릇한 뻣뻣함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졌다고 했다.

선거 때 내걸었던 플래카드의 재활용은 우리 집안 곳곳에 여러 가지 모양새로 한동안 남아있었다.
두툼한 무명천은 무엇으로 재활용해도 쉽게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질리도록 질긴 무명천으로 만든 것을 보듬고 살았던 일을 생각하면 참 우습다.
세상이 지금과 그리 달랐으니 ...
부족한 것이 많고 누추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을  이야기가 선거철 형제들이 모일 때면 추억으로 召喚(소환)된다.


'藝友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솜궤적  (0) 2020.04.15
밀물과 썰물  (0) 2020.04.14
어느날  (0) 2020.03.16
시니어 프리패스 카드  (0) 2020.02.27
풍월당  (0)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