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名畵

[ 영화 ] 천일의 스캔들

藝友 2020. 5. 21. 07:48

 

 

당시 16세기의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하고 왕비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되는 상반된 매력의 자매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에 맞는 웅장한 건물과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을 정도의 아름다운 의상과 영상미

궁궐 내 정치 싸움과 등장인물들 간의 인간관계에 대해 강한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심리적인 밀고 당기는 두뇌싸움.....

 

무엇보다 당시의 여자가 가문의 권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드라마틱 한 삶

많은 소설과 연극, 영화에 흥미로운 소재거리를 제공했다.

나탈리 포트만, 에릭 바나, 스칼렛 요한슨 등 호화 캐스팅의

<천일의 스캔들, 2008년작> 역시 그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영국 작가 필리파 그레고리의 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영국 귀족 불린가의 야심적인 딸 앤(나탈리 포트만)은 외삼촌이자 왕의 측근 노포크 공작의 도움으로,

헨리 8세를 유혹하여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왕은 순수하고 다소곳한 동생 메리를 마음에 들어 하여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마침내 메리는 왕의 정부가 되어 궁로 가게 되고,

이에 질투심과 분노에 빠진 앤블린은 왕을 빼앗을 기회만 노린다.

 



마침내 왕은 앤에게 빠지게 되고, 그녀는 그가 이혼하고 정식으로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줄 때까지

그와의 잠자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고 애간장을 태운다.

천신만고 끝에 메리도 버리고 왕비 캐서린과도 이혼한 헨리 8세는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앤에 대한 왕의 열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식어가고,

사랑은 궁정의 다른 시녀들에게로 옮겨간다.

결국 남동생인 조지 불린 과의 근친상간의 죄를 덮어쓰고,

망나니의 칼에 의해 목이 잘리는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많은 역사가들은 앤 불린에 대해 다르게 말한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알렉스 폰 툰 젤만에 의하면,

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즉, 앤 불린의 여동생 메리 불린은 원래 헨리 8세의 역사적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와 내연관계에 있었고,

그의 왕비에 의해 영국으로 쫓겨난 후 다시 헨리 8세를 연인으로 낚아챘다고 한다.

프랑수아 1세는 "메리가 타고 놀기 재미있는 여자"라고 말하면서 짓궂게 '나의 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영화에서 메리를 수줍고 순진한 여성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또한, 앤을 교활하게 왕을 조정하는 여성으로, 헨리 8세를 단순히 잘 속아 넘어가는 섹스 중독자로 묘사한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앤 블린과 메리 블린

 


이 영화에서처럼, 앤 불린은 5백여 년 동안 사람들에게 왕을 유혹하여 이혼까지 시킨

'요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그리고 많은 소설, 영화, 연극에서도 이러한 캐릭터로 묘사되어 왔다.

나탈리 포트만 역시 앤 불린을 야심적인 팜 파탈(femme fatale) 유형의 여성으로 연기했다.

그런데 역사학자 헤일리 놀란은 그녀의 책 <앤 불린 : 500년의 거짓말>을 통해

앤 불린의 인도주의적, 종교적, 정치적 행보를 추적하면서, 이제까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삶을 잘못 판단하게 한 역사 자료들을 비판한다.

그 자료들은 앤 불린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헨리 8세를 유혹한 팜 파탈로,

왕에 대해서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는 희생을 감수한 남자로 그림을 그렸다.

이것들은 모두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책에 따르면 헨리 8세는 앤 볼린을 만나기 전부터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기 위해

은밀하게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고,

앤 불린은 왕의 구애를 피하기 위해 1526년 여름부터 한 해 동안 궁정을 떠나 도망가 있었다.

헨리 8세는 앤 볼린에게 거의 3년간이나 연애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들은 그녀를 유혹하기 위한 일종의 성적 괴롭힘, 혹은 성희롱이었다.

그중 한 편지에는 "여자가 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예스를 의미한다"라는 식으로,

제멋대로 여자의 마음을 해석한 구절도 있다.

여성에 대한 16세기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그다지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

앤 불린은 팜 파탈 형의 유혹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의회를 통해 급진적인 빈곤 퇴치법을 추진한

열정적인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5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심지어 남동생과 근친상간을 한 패륜 여성,

그리고 왕을 시해하려 한 독부로 기소되었다.

이 모든 죄에 대한 증거들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가차 없이 사형당했다.

그리고 헨리 8세는 볼린이 처형당한 다음날, 정부 제인 시모어와 약혼을 했다.


왜 이렇게 앤 불린에 대한 악의적인 이미지가 굳어진 것일까?

당시 스페인 대사였던 유스티스 차퍼 이즈(Eustace Chapuys)의 기록이

앤 볼린에 대한 현대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전 왕비 캐서린 왕비의 모국인 스페인의 외교관으로서 당연히 캐서린의 편이었고,

불린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1500년대에 기록을 하고 보관한 사람들,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그 기록을 해석해온 사람들도 모두 남자들이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들은 여성이란 오직 속임수와 성적 매력만으로 권력을 얻는다는 편견을 가졌고,

앤 불린의 지적 능력과 도덕적 품성은 간과했던 것이다.

 

 

앤 블린이 낳은 딸은 다들 눈치챘겠지만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인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타이틀을 마련한 여왕이다.


당시 해전 하면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유명했지만 이 무적함대를 깨부수고

동인도 회사를 세우는 등 수많은 치적을 남긴 왕이다.
이 기틀을 삼아 빅토리아 여왕 때 영국은 크게 부흥했고

이후 영국은 여왕이 통치해야 부흥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천일의 스캔들은 그때 당시의 시대상을 떠 올리면서 보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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