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한번도 서로에게 살가웠던 적이없었다.
꽤나 가부장적의 화신 같은 존재였던, 가족과 좀체 가까워지기 어려웠던 괴팍스러운 가부장 말이다.
시대적 아픔 같은게 음주의 배경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키운건 "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일제시대부터 市였던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아버지 이름 석자였지만 , 하는 일마다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경상도 사투리의 커다란 목소리로 대청마루에 털석 주저 앉으시며
나훈아의 "물어~ 물어 찾아왔소 그님이 계시던 곳~"을 불러대던 노랫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부러 잠든 척 눈을 감았다.
아침에 면도를 하셨지만 한 나절 까칠하게 자라 술과 담배 내음이 섞인 수염을 부비며 입을 맞추고
땅콩이며 양과자가 담긴 종이 봉투를 오바 호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쥐어주고
잠들어 있던 나를 안아 작은 방으로 옮겨 주시던,
가진게 없음에도 한 없이 강인했던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외딸인 내 앞에서 늘 푸념을 하셨다.
" 니 큰오빠만 안뱄어도 느그 아부지랑 안 살았다"고...
'정치하는 사람, 술 좋아 하는 사람과 결혼 하지마라고'
늘 유언같이 내게 말씀 하시던 지금 95세.. 백수를 눈 앞에 두시고도
그 옛날 미운정에 몸서리쳐 하신다.
술 좋아하고 , 돈 많이 못 번다고 미워하면서도
아버지 밥 그릇은 언제나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숨어 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저녁을 집에서 드시니 아버지 밥 그릇은 소복한 하얀 쌀밥으로 담겨져
뜨끈 뜨끈한 아랫목 이불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아랫목에 있는 밥그릇을 잊고 발로 차서 엎어버린 기억도 나고.
서랍장 위에 개켜 얹어놓은 이불 속 밥 그릇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을까?
정성스럽게 준비 된 밥상 앞에서 부모님의 오손도손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에
잠든 척했던 나는 스르르 꿈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때는 연탄불과 조금 발전해서 석유곤로를 썼으며 전자 밥통이라고 보온만 되는 것이 나왔으며,
後엔 전기밥솥이 나오고 더 나아가 전기 압력솥이 나왔고...
가스렌지에, 전기렌지까지..
모두 그렇게 사는거라고 했는데~
세상이 이렇게 바뀔지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