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名畵

[ 영화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藝友 2019. 7. 7. 17:35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극적이고 큰 사건을 기대하는 이들의 심리에 부응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돌아서면 가슴이 찡하다. 

소소한 우리의 일상이 눈물겨운 것은 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있었다. 왜 하필이면 17세기일까 싶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러 덕수궁을 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사람만을 이해하기에도 부족한 그 그림들을 두고 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이라 이름 했을까.

렘브란트, 그는 그 당시의 미술사적인 조류를 대표하는 화가였기에 

그리고 그런 대표로서 널리 알려져 있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으로 인한 부를 거머쥐고 있었고 그

러한 부의 여파로 중상층 계급 또한 어느 정도의 부를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고상한 귀족계급이 성경 혹은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일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 이들이 그림을 찾게 되자 

그런 기호를 따르는 화가들이 생겨났고 온갖 일상들이 그림으로 담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을 그린 그림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생겨났던 것이고 그래서 17세기의 네덜란드 회화가 중요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런 화풍이 한창일 때의 그림으로 

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은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가 소설을 써냈고 그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다. 

 

17세기 네덜란드 조이트홀란트 주의 델프트, 

무역의 중심지이며 운하가 흐르는 이 도시에 그림을 그려 생계를 꾸려 나가는 화가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re)의 집에 

그리트라는 소녀가 하녀로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순수하고 세상을 모르는 소녀는 하녀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고 주인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다. 

아마도 소녀에게는 미술에 관련된 직업을 가졌던 아버지가 있었으리라. 

영화초입에 그리트가 야채 써는 모습을 보자. 

골고루 색깔 맞춰서 장식하듯 담는 소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예술 감각이 살짝 엿보이지 않는가. 

글도 모르는 하녀가 그림에 관심을 갖고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던 시대에 

관객이 그 사실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도록 하는 복선이다. 

 

줄거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소녀가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 챈 주인이 여러 정황을 거쳐 

그녀를 모델 삼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걸작을 그려내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어느 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에게 숨겨져 있는 본 모습을 읽으려면 

얼마나 친숙해져야 하는지 얼마나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걸 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그렇기에 뛰어난 화가는 드물고 뛰어난 인물 사진을 찍는 이는 드문 법이다.


두 사람은 사랑의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며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숨김이 더 아픈 법이 아니던가. 

볼거리도 풍성하다. 

물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놓쳐버릴 사항들이다. 

당시 하녀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당시 중산층의 집안은 어떠했는가. 

당시 집기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세세한 사항들을 그저 지나쳐 버리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그는 이미 좋은 볼거리 하나를 놓쳐버리고 있는 셈이 된다. 

 

제대로 된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또한 여러 면으로 신경쓴 기색이 역력하다. 

구석구석 상세히 보자. 하나 둘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오늘날의 피아노 비슷한 버지널(virginal)은 그가 그림으로 즐겨 그린 악기로 보아둘 만하다. 

또한 화가의 집답게 그의 집안에는 여러 그림이 놓여 있다. 

아니 저 그림이 왜 저기에 있지 할 정도의 그림도 있다. 

루벤스의 “노인과 여인”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 외에 여러 명작들이 등장한다. 아는 사람은 알리라. 

유수한 미술관에나 가야 볼 그림들을 뜻밖에 만나는 그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네덜란드의 풍경 또한 보아 둘 가치가 있다. 운하와 시장풍경, 돌이 깔린 도로... 

그리고 눈 오는 날 제방을 걷는 두 연인, 그리트와 피터,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환상처럼 아련하게 마음을 붙잡지 않는가. 

 

걸작을 완성했고 그림은 주문자에게로 넘어갔지만 하녀에게 남편의 마음을 앗긴 부인의 질투로 그리트는 쫓겨난다. 

원작에서는 십년 뒤 그리트에게 진주 귀걸이가 전달되면서 끝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녀가 한명 들어왔다가 간 것밖에 되지 않는 지극히 조용한 영화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인물의 심리묘사는 지극히 섬세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분명 여자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원작 소설가가 여자라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래서 피터 웨버는 원작을 제대로 옮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힘겹다. 

표면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극히 소소한 일들이 우리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일상은 눈물겹다. 

소녀는 자라서 여인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 자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들만큼 시시해 보이는 수많은 일들이 소녀의 가슴을 지나가고 

그리고 녹아 한 생을 이루고 그녀만의 아름다움이 되어간다. 진주처럼 아픔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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